보스니아 전쟁

보스니아 전쟁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발생한 내전으로, 이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내에서의 민족적 긴장과 분열로 인해 촉발되었다. 이 전쟁은 주로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사이의 민족적 갈등에 의해 심화되었고, 여러 인종과 종교적 배경을 가진 집단들이 복잡하게 얽힌 전투를 벌였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전쟁은 광범위한 인권 침해와 대량 학살, 민족 청소 등의 잔혹한 사건으로 특징지어진다.

전쟁의 발발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시작되었다. 1992년 3월, 보스니아의 다수 민족인 보스니아 무슬림과 크로아티아인이 독립을 지지했고, 이에 반발한 세르비아인들은 보스니아 내전으로 이어지는 폭력을 일으켰다. 세르비아 민병대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보스니아 전역에서 공세를 취하며 세르비아어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소수 민족에 대한 공격과 학살이 자행되었고, 대표적으로 스레브레니차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이 국제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보스니아 전쟁 기간 동안 국제 사회의 개입도 이루어졌다. 유엔은 인도적 지원을 위해 여러 구호 작전을 실시하였으며, 나토는 공습으로 세르비아 군의 공격을 저지하려 했다. 1995년에는 데이턴 협정이 체결되어 전투가 중단되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에서 세 개의 민족주체 간에 권력을 나누는 방식으로 새로운 정치 체제가 수립되었다. 이 협정에 따라 보스니아는 세르비아계、크로아티아계、보스니아계가 각각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복잡한 행정 구역으로 분할되었다.

전쟁의 여파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수많은 인명 피해와 함께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으며, 국토의 파괴로 인해 재건 과정이 필요했다. 전쟁 후에는 전후 처리 문제와 용서 및 화해, 생존자들에 대한 지원 등이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는 전쟁 범죄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보스니아 전쟁은 현대사에서 인종과 민족 간의 갈등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